아버지로서 아들로서 외로웠던 장부의 길.
100년 후, 오늘 그의 '장부가'를 다시 불러본다.
한국 인물의 재발견 ? 서거 100주년을 맞는 '의사 안중근’
왜 안중근인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조선인"?
"조국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 독립투사"?
2009년부터 올 해까지 안의사의 의거 100주년과 서거 100주년을 기념하여 그에 대한 조명이 많이 이루어졌다.
방송사 다큐멘터리부터 시작하여 소설, 연극, 오페라, 뮤지컬 등등 많은 문화 컨텐츠들이 제작되었고, 유해발굴
등의 사업도 추진되었다. (애석하게도 그의 유해는 그 행방이 아직도 묘연하다.) 하지만 그 때 그 사건에 대해
우리는 과연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을까, 그의 용감한 행위에 가려져 있는 인간 안중근에 대해서는 과연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안중근, 그는 살인자인가? 약육강식의 논리가 세계를 지배하던 때. 제국주의의 소용돌이 속에 각종 불평등 조약과 전쟁, 테러가 난무하던 아비규환과도 같았던 그때, 변방의 작은 나라 ‘대한제국’의 앞날 지키고자 총을 들었던
31세 청년 안중근. 똑같이 수백만명의 목숨을 앗아갔지만 히틀러는 살인자 되고, 나폴레옹은 영웅된다면, 조국을 위해 단 한 사람을 죽인 안중근은 과연 살인자인가?
그의 이야기는 너무도 드라마틱했다. 모든 영웅들의 삶이 그러했듯 외롭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겪어야 했던 그의
가족들.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독립투사’보다 그가 그런 선택을 하게 되기까지, 또 사건이 벌어진 이후 숨가쁘게
돌아갔던 일련의 상황들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진실’과 ‘정의’가 왜곡시켰던 가슴 아픈 현실.
예술인으로서 우리는 더욱 절실히 공감할 수 밖에 없었다. 예술인과 독립투사는 서로 반대편에 서 있는 것 같지만 오로지 예술에 대한 갈망 하나로 우리 역시, 가족들에게 어떤 짐을 지우고 있으니까. 또한 예술인으로서 ‘진실’과 '정의’을 알고 올바른 철학을 가진 진정한 '예술'을 펼쳐야 하니까.
우리에겐 사명이 있다. 그때와 다름없이 지금도 여전히 ‘진실’과 ‘정의’쯤은 강자의 이익 앞에선 우습게
왜곡되고 있다. 하지만 어느덧 그런 상황들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우리는 이 현실에 대해 다시금 환기할 필요가 있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후손으로서, 앞으로 있을 후대의 조상으로서 우리에겐 ‘올바른’ 사회를 물려줘야할 의무가 있으니까.
2010년 아버지로서 아들로서 외로웠던 장부의 길을 걸었던 안중근!
그에 얘기가 시작됩니다.